신의탑/밤쿤

[밤쿤] 크리스마스 날 밤에

S_Nanak01 2017. 12. 25. 21:12

크리스마스 기념!

제목에 맞게 밤의 시작시간에 올려봤습니다.

현대AU 대학생 밤쿤.

늘 그렇듯 캐붕주의

쬐끔 냐함.

 

 

***

 

길을 걷는 사람들의 옷자락이 펄럭이고 있었다. 밖에는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창문에서 보여주는 풍경을 바라보던 밤이 머그컵을 들어 따뜻한 차를 마셨다. 모르는 사람들의 삶의 한 조각을 바라본다는 것은 밤에게 작은 즐거움이었다. 지금처럼 카페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실 때면 더 그랬다. 한창 바깥에 빠져있는 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

 

밤이 고개를 돌렸다. 제 맞은편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앉아있었다. 그녀는 밤의 취미에 어울려 줄 생각이 없는지 어두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쯤 빈 머그컵을 잡고 머뭇거리던 그녀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헤어지자.”

 

여자의 차디찬 말에도 밤은 별 표정이 없었다. 이미 예상한 반응이었다. 밤이 대답했다.

 

. 그래요.”

 

그녀의 표정이 점점 무너져 내렸다. 이별을 고한 것은 그녀였음에도 밤의 대답에 상처를 받은 것 또한 그녀였다. 울음을 참는 지, 입술을 깨문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갛게 칠해진 구두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

 

 

 

또 헤어졌어?”

.”

너 답지 않네. .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겨울을 닮은 손가락이 밤의 볼을 매만졌다. 밤은 눈을 감고 그 손길을 느꼈다. 차가울 것 같은 손가락은 따뜻했다. 밤은 제 볼을 쓰다듬는 손을 쥐고 다시 눈을 떴다. 환이 벌여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호수를 닮은 깊은 눈동자였다. 걱정으로 일렁이는 푸른색을 본 밤이 미소를 지었다.

 

아무 일도요.”

아무 일도 없는 놈이 그래? 너 말이야 혹시 따로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 괜히 이러는 거 아니지?”

하하하,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행동이 그렇다고 하니까. 누군데? 내가 아는 애면 도와줄 수 있는데.”

정말 아니에요. 그냥 연애하는 게 싫어졌나 봐요.”

“...네 나이에 연애하는 게 싫다니... 길 가던 남자들 다 울겠네. 그래서 애인에게 차인 솔로님. 크리스마스는 어쩌시려고?”

같이 술이나 한 잔 하실래요?”

그럴까? 나도 이번 크리스마스엔 가족들이 다 바빠서 완전히 혼자거든, 오랜만에 솔로들끼리 마셔보자고

 

손의 주인이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푸른 목소리엔 상쾌한 민트향이 섞여있었다. 그의 미소에 밤의 마음 한구석도 밝아졌다.

 

 

 

 

***

 

 

 

누군가의 생일이자, 연인들의 날인 크리스마스였다. 어디가나 나오는 트리와 장신구들은 보는 사람들을 하여금 즐겁게 만들었다. 반짝거리는 거리와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커플들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한 쌍이었다. 밤은 커플들과 화려한 길거리를 스쳐 주택가로 들어갔다. 여기서 10분 거리에 쿤이 사는 오피스텔이 있었다. 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선물로 오피스텔을 받았다. 이사 온 첫 날, 쿤은 집들이하러 온 밤에게 언제든 놀러 오라며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밤은 외박을 하거나 공부할 곳이 필요할 때마다 쿤의 집을 찾았다. 딱히 용건이 없음에도 놀러오는 경우도 있었다. 갑작스런 방문에도 쿤은 늘 받아주었다. 아마 아주 어릴 적부터 함께 지내왔기 때문인지 편해서 허락된 것이리라. 밤은 쿤의 집을 좋아했다. 어른이 된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면 유치해 보일지 모르지만, 쿤의 오피스텔은 저에게 비밀기지 같았다. 어릴 적 어른들이 모르는 곳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소중한 물건을 숨겨두는 곳, 밤에게 쿤의 집은 그런 곳이었다. 어느 세 집에 도착한 밤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안으로 들어선 밤이 습관적으로 쿤을 찾았다. 밤이 거실에 몇 발자국 들어놨을 때, 쿤이 욕실에서 검은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 일찍 왔네?”

“...씻고 계셨네요?”

. 잠시만 기다려 머리만 말리고 올게.”

.”

 

밤은 식탁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그곳에 앉으면 쿤이 잘 보였기 때문이었다. 쿤은 헤어드라이기를 가지고 욕실 옆 거울에 서서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쿤이 입고 있는 가운은 작년 생일에 밤이 선물이라며 사준 것이었다. 밤은 왜 하필 검은 색이냐며 삐죽이던 그가 생각났다. 밤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더니 입어주는 게 고마웠고 선물을 받았을 당시 드물게 뾰로통했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쿤은 자신은 검은색과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 밤은 검은색이 쿤의 하얀 피부를 돋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검은색은 쿤에게 저의 색이였다. 쿤은 종종 검은 색을 볼 때 마다 네 생각난다며 웃고는 했다. 헤어드라이기의 소음이 멎었다. 조용해진 공간에 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보다 소음이 빨리 멎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제가 기다린다고 대충 말리고 올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쿤이 헤어드라이기를 내려놓고 밤에게로 다가왔다. 밤 역시 쿤에게 다가갔다.

 

?”

 

밤은 쿤이 부르는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푸른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아직 물기를 머금은 머리카락이 느껴졌다. 밤이 입을 열었다.

 

더 말리셔야죠. 감기 걸리면 어떡해요.”

네가 기다리잖아.”

어차피 밤새 술 마실 텐데, 조금쯤은 늦어도 돼요.”

그래도.”

 

쿤이 고집을 부렸다. 밤이 엄하게 바라봤지만 살며시 접혀지는 푸른 눈에 곧 넘어가고 말았다. 밤이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아까보다 진한 미소를 지은 쿤이 팔을 뻗어 밤의 어깨에 걸쳤다. 가까이 다가온 몸에서 바디워시의 향이 은은하게 났다. 밤이 쿤의 허리를 잡으려는 찰나, 쿤이 뒤로 물러났다. 주방 쪽으로 걷던 쿤이 한 구석에 놓아둔 고급스런 쇼핑백과 와인 잔 두 잔을 꺼내 식탁에 내려놓았다. 쿤이 하던 행동을 보던 밤은 냉장고 쪽으로 향했다. 밤이 냉장고 문을 열자, 문소리를 들은 쿤이 입을 열었다.

 

냉장고 중앙 쪽에 치즈랑 과일 있어.”

손님인데 시키시는 거예요?”

여긴 셀프서비스거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잘한 웃음을 흘린 밤이 냉장고에서 포장된 치즈와 과일을 꺼냈다. 왼손엔 치즈상자를 오른쪽엔 대충담긴 과일을 든 밤이 다리로 냉장고 문을 닫았다. 밤은 과일들을 싱크대 옆에 둔 뒤 치즈는 식탁으로 가져갔다. 쿤은 무언가를 찾는지 서성이고 있었다. 와인 잔과 쇼핑백의 모양을 보건데 와인 오프너를 찾는 모양이었다. 쿤의 모습을 잠깐 보던 밤은 식탁에 박스를 놓고는 포장을 뜯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치즈가 눈에 들어왔다. 밤은 열린 상자 속에 들어있는 치즈를 꺼내고 싱크대로 돌아와 과일들을 씻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주방 찬장을 둘러보던 쿤은 물건들 사이에 서 있던 와인 오프너를 찾아냈다. 와인 오프너를 식탁에 가져다 놓은 쿤이 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도울 것은 없는 지 찾아보는 모양이었다. 쿤은 밤의 분주한 등을 보고는 도마와 접시를 꺼냈다. 과일을 손질하고 접시에 담기 위해서였다. 저와 밤사이에 도마를 내려놓은 쿤은 과일들의 껍질을 까고 먹기 좋게 썰었다. 예쁘게 잘린 과일들은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졌다. 쿤이 과일손질을 다 끝낼 때 즈음, 밤이 씻긴 포도를 그릇에 옮겼다. 끝에 매달린 포도 한 알이 아슬아슬하게 춤추고 있었다. 밤이 조심하면서 포도를 옮겼음에도 계속 움직이던 한 알은 그릇에 내려놓기도 전에 주변으로 떨어졌다. 밤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조심하면서 했는데도 홀로 굴러간 포도 알이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 잠시 다시 씻고 올려놓을까 했지만 아직 남은 과일이 있었다. 일단 내버려 두기로 한 밤이 잠시 과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밤을 바라보던 쿤이 구석에 굴러간 포도 알을 냉큼 입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씻고 있는 과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밤이 쿤에게 말을 건넸다.

 

쿤씨. 떨어진 건데 먹으면 어떡해요

너 웬일로 잔소리를 한다? 차여서 그래?”

그런 거 아니래두요. 다 씻었으니 식탁에 좀 갖다 주실래요? 화장실가서 손 닦고 올게요.”

그래

 

물기를 몇 번 털던 밤이 화장실로 사라졌다. 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쿤은 식탁으로 돌아갔다. 치즈 옆에 접시를 두고 아직 포장돼 있는 쇼핑백을 뜯었다. 쇼핑백의 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코르크 뚜껑이었는데 쿤은 조심스럽게 기둥을 잡고 와인을 꺼냈다. 잘빠진 병이 쿤의 손에 딸려 나왔다. 쿤은 와인의 이름을 알아보려는 듯 뭉특한 몸체부분을 이리저리 돌렸다. 필기체로 쓰여진 영어가 쿤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이름과 년도를 바라보던 쿤이 와인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옆에 놓인 와인 오프너를 든 쿤의 시야에 밤의 모습이 들어왔다. 손을 닦고 온 모양이었다. 쿤은 밤의 모습을 한 번 바라보고는 와인 오프너로 코르크를 땄다. 이윽고 다가온 밤이 의자를 당기고는 제 자리에 앉았다. 잔에 와인을 따르던 쿤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엇 때문에 차이셨어?”

그냥...연락 꾸준히 안하고 뭐 그런거죠.”

.”

“?”

너는 네가 좋다면 누구든 상관없는 거야?”

“...”

 

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긍정에 웃은 쿤이 와인 잔을 밤에게 건넸다. 나머지 한 잔을 제 쪽에 당긴 쿤이 자리에 앉았다.

 

그럼 나는 어때?”

 

금안이 당황으로 물들여졌다. 와인 잔을 쥐고 있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어쩔 줄 모르는 밤과 달리 쿤은 웃고 있었다. 밤의 반응이 궁금하다는 듯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푸른 눈동자로 응시하고 있었다. 밤은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여자 한정이에요.”

그래? 나쁜 남자네?”

“...”

.”

후회하느니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나아요.”

 

쿤이 웃었다.

 

너 답지 않잖아? 좋아하는 건 일단 돌진 해 보는 거 아니었어?”

“...아무리 저라도 잃을지도 모른다고 느끼면 주저 하게 된다고요. 그런 감정을 느끼기도 전부터 쿤씨는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밤을 바라보던 쿤이 몸을 일으켰다. 느긋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닿는 맨 발바닥 소리에 밤의 몸이 움찔거렸다. 밤의 옆으로 다가온 쿤이 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가 정 그렇다면 친구로 남을까?”

“...”

지금처럼 같이 공부하고 놀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가...”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이 점점 내려왔다. 손가락은 선을 긋는 것처럼 머리카락에서 볼로, 볼에서 턱 끝으로 움직였다. 밤이 고개를 들었다. 턱에서 머물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턱 끝에서 목 뒤로, 뒤에서 잠시 머물던 손가락은 다시 앞으로. 느리게 항해하던 손가락은 쇄골에서 멈췄다. 무언가 고정하려는 듯 움직인 손바닥이 어깨를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상쾌한 민트향이 밤의 코를 간질였다. 향이 진해질수록 밤을 가득 담던 눈동자 또한 점점 가까워졌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머뭇거리던 밤이 조심스레 입술을 깨물었다. 밤의 마음에 응답하듯 그가 입을 열었다. 좁은 속과 안에서 느껴지는 살덩이에 밤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두 사람의 혀가 뒤엉킬 때마다 밤의 몸이 점점 뜨거워졌다. 쿤의 입안을 훑던 밤이 가운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부드럽고 단단한 살결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옆구리에서 무릎 끝까지 쓸어내린 밤이 다시 위로 올라갔다. 느리게 허리까지 올라간 손이 올라오라는 듯 허리를 당겼다. 쿤은 다리를 벌려서 밤의 위에 앉았다. 맨 살에 앉기엔 바지가 까끌거렸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입술을 뗀 밤이 쿤의 등 쪽에 달라붙어 있던 천을 잡아당겼다. 검은색으로 감싸여져 있던 하얀 어깨가 훤히 드러났다. 밤이 목에 깊게 키스하고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의 박자에 헐떡이던 쿤이 입을 열었다.

 

그러다가..,고 싶어,지면 같이하고

 

쿤의 말을 듣던 밤이 식탁위에 쿤을 넘어뜨렸다. 치즈와 과일을 담은 접시가 끝 쪽으로 밀리고, 와인 잔이 바닥에 부딪혀 나뒹구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오피스텔의 너머의 거리엔 징글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