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탑/밤쿤

[밤쿤] 어느 날 아침

S_Nanak01 2019. 2. 16. 21:27

신의탑 전력 60

주제 : 초콜릿

 

전력 겸 발렌타인 기념 밤쿤!

원래 214일에 써야했는데, 그날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못 쓰고 다음날은 학원 때문에 못써서 미루다가 이제 쓰네요 흐흑...

당연하게도 많이 짧습니다..허허...(면목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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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풍기는 달콤한 향에 밤은 무의식중에 봉투를 고쳐 안았다. 일 년에 단 한번, 연인들끼리 초콜릿을 주고받는 다는 발렌타인데이는 쿤과 사귀게 되면서 필수로 체크하는 기념일이 되었다. 함께 한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번거로워지는 것이 기념일이었으나, 두 사람은 늘 바빴기에 의무적으로 애정표현을 요구하는 날을 좋아했다. 게다가 기념일이 다가오기 전, 쿤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것은 밤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밤이 봉투 안에 든 초콜릿을 바라봤다. 고급스러운 그림이 그려진 상자와 귀엽게 묶인 리본에 브랜드가 적혀 있었다. 모양도 맛도 일품으로 유명한 초콜릿이었지만 정작 상자를 바라보는 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밤은 매년 무슨 일이 있어도 초콜릿만은 수제로 만드는 것을 선호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게 많았던 자신의 연인은 값이 나가는 물건보단 정성이 들어간 물건을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잘 만드냐, 못 만드냐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만 되면 자신의 작품을 기대하던 푸른 눈동자가 떠올라 밤의 마음이 쑤셔왔지만, 어제는 밤늦게까지 바빴기에 할 수 없었다. 오늘 만들어서 밤에 줘볼까란 생각도 해봤지만, 쿤은 요새 가문 내 행사로 바빠서 아침 인사를 하는 게 다행일 정도였다. 밤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제 늦게 까지 바빴던 이유는, 자신의 일로 바빴다기 보단 쿤의 일로 바빴다는 거에 가까웠다. 어제는 쿤 가문의 파티가 있었고 밤은 쿤과 함께 파티장에서 쿤가문 사람들을 만났었다. 쿤은 별거 아닌 연례행사이니 빠져도 된다 했지만 밤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가 가문에만 가면 골치아파하는 걸 알고 있는데다 자신도 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심지어 나름 공부까지 해둔 밤이었으니, 물러설 리가 없었다. 물론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 밤 뿐이었고, 실전에선 능글맞은 쿤가문 형제들에게 휘둘려지기만 했지만 말이다. 동생의 연인이 순한 양이란 걸 안 형제들은 밤이 곤란한 질문을 피하려 할 때마다 술을 마시라는 짓궂은 짓을 하기도 했다. 결국 보다못한 쿤이 밤 대신 몇 차례 마시다 취하기 시작했고, 밤은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쿤을 데려와 눕히고는 침울하게 북어국을 끓이는 걸로 마무리했었다. 초콜릿을 굳이 사 온 이유도 시간도 시간이지만 숙취로 고생할 그가 아침부터 단 냄새를 맡았다간 더 괴로워하지 않을까 걱정된 이유도 컸다. 새벽의 기억 속을 헤엄치던 금안이 현실을 비췄다. 점차 다가오는 숙소의 풍경에 밤이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흐지부지 지나가겠네. 기념일이라지만 엄연히 평일이었다. 당연히 두 사람은 각자 스케쥴이 있었고 특히나 쿤은 가문의 일로 나가야 했다. 밤이 걸음을 재촉했다. 매년 맞이하는 기념일이라지만 밤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날을 숙취나 일 따위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먼 곳에 있던 숙소가 어느덧 가까워지고 있었다. 쿤씨를 깨워드리고 북어국을 차려드리고 초콜릿을 드려야지. 밤의 급한 마음을 대변하듯 주변의 풍경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신수를 사용해 재빨리 도착한 집 안은 고요했다. 아직 쿤이 깨지 않았는지 서늘함마저 감도는 공기에 밤이 초콜릿을 식탁에 두고 곧잘 방으로 향했다. 마음 같아선 더 재우고 싶었지만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밤이 포켓을 가시화 시켜 시간을 확인한 뒤, 방문을 빠르게 노크했다.

쿤씨 주무세요?”

혹여 쿤이 대답했을 까 몇 초정도 가만히 서 있었지만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 못했단 것을 확신한 밤이 방문을 열며 말을 건네왔다.

쿤씨. 괜찮으세요? 일어나봐요. 벌써 8시에요.”

...머리야...”

“..죄송해요.. 어제 저 때문에...”

밤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주눅이 든다. 차라리 쿤의 말대로 집에 있었다면 그는 적당히 어울려주다 빠져나왔을 것이다. 밤이 쿤이 누워있는 침대로 가까이가자 쿤이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왜 미안해하고 그래.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야. 몇 천 년 산 능구렁이들인데...그 정도로 한 거면 초면치곤 잘 한 거야. 고마워. 그래도 네가 시선을 끌어준 덕에 만나볼 인사들은 다 만나본데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나 혼자 갔으면 온갖 소리하며 꽁무니 뺄 놈들이 몇 있단 말이지.”

살짝 이가 갈리는 듯한 소리에 밤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어제 비선별인원 얼굴 좀 보자며 여기저기서 몰려드는 턱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쿤과 어딘가 닮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다가오는 게 밤은 내심 좋기도 했고 부럽기도 했다. 자신은 눈을 떴을 때부터 혼자였으니, 형제니 가족이니 같은 것들은 거의 실감나지 않았다. 출생의 비밀도 그토록 집착했던 라헬도 결국 거의 남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가족. 소망한 적도 없는 것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밤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자 어깨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밤이 고개를 돌리니 쿤이 제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쿤이 밤을 불렀다.

.”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밤이 쿤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건들이며 대답했다.

.”

상냥한 목소리를 들은 푸른 눈동자가 잠시 아래로 내려가더니 곱게 휘어지며 말을 이었다.

우리.”

“?”

"오늘은 단 둘이서만 있자, ?"

쿤의 목소리가 드물게 살짝 올라갔다. 애교를 부리듯 밤의 어깨에 더 깊숙이 들어오자 밤이 난감해하며 대답했다.

“...일은 어쩌시려구요?”

쿤이 웃는 표정으로 밤의 품에 파고들었다. 숙취 올라온다는 둥, 어서 대답하라는 둥 걱정 어린 잔소리가 들려왔지만 쿤은 아무래도 좋단 듯 밤의 가슴에 얼굴을 비빌 뿐이었다.

몰라, 그런거 능구렁이들이 알아서 하겠지.”

쿤씨이-.”

그리고 오늘은 발렌타인데이잖아.”

연인의 날은 함께 있어야지. 드물게 고집부리는 쿤의 목소리에 결국 두 손을 든 건 밤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창가에선 볼 라이트가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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